2008년 5월 10일 토요일

"항균바이러스" 때문에 생각난 것들

아래 신문사설은 한 7년 전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좀 어이가 없어서 제 컴퓨터에 잘 간직해놓은 내용이죠. 아마 과학에 대한 내용이 사설에 실리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이런 내용들은 좀 곤란합니다. 일단 그 사설의 앞부분만  읽어보시죠.

[사설] ‘癌도 세균’ 대책 시급

유흥접객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 절반이 자궁암을 일으키는 파필로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고, 이들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에 의해 다른 여성도 이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는 국립보건원의 최근 연구는 충격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각종 암, 심장병, 궤양 등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각종 질병이 유전적 소질과 생활습관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의학적 연구는 세균이야말로 이런 만성질병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임을 밝혀 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한 위궤양만 해도 과거에는 스트레스나 매운 음식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위 속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세균이 궤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이로써 위 속에서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종래의 통설이 뒤집혀진 것이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세균이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하 생략, 전문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어디가 이상한 지 아시겠습니까?

1) 암은 세균이 아닙니다. 따라서 "암도 세균"은 틀렸습니다. (물론 "암도 세균이 일으킨다"의 준말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2) 바이러스는 세균이 아닙니다.
3) 만성 질환과 (바이러스를 포함한) 미생물이 관련은 있겠지만 그 주된 원인이 세균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궁경부암 같은 몇몇 암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주된 원인이 세균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4) 세균이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는 것은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아무튼 정설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의 과학자라고 한 것을 봐서는 극히 마이너 그룹이 아닐까 합니다.

이 중에서 특히 첫번째, 바이러스와 세균을 구별못하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균이라고 하면 안된다, 항균제와 항바이러스제는 다르다, 뭐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단골 메뉴입니다. 여기엔 바이러스를 미생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바이러스를 생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으로 보는 견해가 고전적이라면 최근에는 (편의상) 바이러스를 미생물의 범주에 넣어서 보기도 합니다. 미생물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기 힘든 작은 생물"이라는 의미이므로 바이러스가 생물이라면 미생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생물시간에 가르치기도 합니다. Thomas Brock의 유명한 미생물학 교재 The Biology of Microorganisms에도 바이러스 챕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균이라고 할 수 있는가는 또 조금 다릅니다. 게다가 세균은 더더욱 아닙니다. 보통 "균(菌)"이라고 하면 세균 (단세포 원핵생물)이나 진균 (진핵생물인 곰팡이나 효모)을 이야기하는데 바이러스는 균이라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균제라고 하면 보통 anti-bacterial (항세균)나 anti-fungal (항진균) 활성을 갖는 물질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항생물질 (Antibiotics)의 아버지 왁스만에 따르면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물질로서 저농도에서 다른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것"을 항생물질로 정의하였습니다만 최근에는 화학이 발달하면서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물질로서"라는 부분은 더 이상 고려되고 있지 않고 "다른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죽"인다고 할 때 다른 미생물은 세균, 진균, 기생충에 한정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는 다르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만큼 유명하진 않아도
스트렙토마이신을 개발해서 노벨상까지 받은 항생물질의 아버지,
셀만 왁스만 (Selman A.Waksman) 박사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항균바이러스로 대비하자"는 말이 몇몇 게시판에서 논란이 되고 있더군요. 저도 한참동안 무슨 말인가 했는데 아마 AI 독감 백신을 개발해서 대비하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하루가 지나서 보니까 백신이 아니고 치료제 타미플루였군요.) 아마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AI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데 항균이라는 말을 쓰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 백신을 바이러스라고 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뭐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백신도 있으니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요. 뭐 대통령이 전공자가 아니니까 개념이 혼동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항균바이러스라고 한다고 밑의 관료들도 항균바이러스라고 답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항바이러스제라고 하든지 항바이러스 백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지요.

(참고로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는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끔 혼용해서 항바이러스제도 항생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섞어서 쓰시는 과학자나 의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약의 메카니즘이나 이런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달라요!
    오늘 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구별하지 못하는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약발 안 듣는 슈퍼독감박테리아 '공포' 사실 지난 번 "항균 바이러스"에서도 썼던 이야기지만 생물학이나 미생물학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비슷한 놈들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박테리아는 세균과 동일한 단어로서, 독립된 생명체입니다. 핵이 없는 원핵생물이고 세포벽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원형의 염색체 DNA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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