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허구로 밝혀진 의학 상식들

허구로 밝혀진 의학 상식들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소스는 BBC라고 하는 군요. 기사 제목은 "'Medical myths' exposed as untrue"입니다. 이 기사에는 7가지 "의학미신"을 이야기하고 있군요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 하루에 물 8잔을 마시면 건강해진다.
  • 사람은 두뇌의 10%만 사용한다.
  •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은 자란다.
  • 면도 후 털이 더 굵고 짙게 자란다.
  • 침침한 불 빛에서 책을 읽으면 시력이 나빠진다.
  • 병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전자기 간섭을 일으켜 위험을 초래한다.
  • 칠면조 요리를 먹으면 잠이 쏟아진다.
등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어두운 곳에서 책 읽는 것하고 면도 후 수염이 더 굵게 자라는 것은 정말인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물 8잔이나 칠면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구요.

하지만 이 BBC 기사에서의 백미는 사실 기사 말미의 다음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기사에도 여기에 관해서 한마디 정도는 주의(?)를 주었으면 좋았을텐데요.

Dr David Tovey, editor of Clinical Evidence journal, said: "The difficulty is it is often hard to disprove a theory. On the flip-side, absence of evidence does not necessarily mean absence of effect. Where reliable evidence becomes really important is in helping people make serious decisions about harms and risks. Many of these 'myths' are innocuous. However, we are still finding evidence that runs contrary to current practice and what we expect."

He gave the example of the relatively recent U-turn in advice over sleeping positions for babies to cut cot deaths. Experts now recommend babies are positioned on their backs when sleeping to reduce the risk of sudden infant death.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꼭 영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믿음의 문제가 개입을 하게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음모론에 빠지거나 하는 것은 물론 현명한 태도가 아닙니다.

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사과도 먹으면 살찐다? Fructose index

오늘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과도 많이 먹으면 살찐다"는 기사인데요. 그럼 사과를 먹으면 살이 안찝니까? 사과(국광) 200그램짜리 하나의 칼로리는 약 100kcal 정도 된다는군요. 그러니 사과도 먹으면 살이 찔 수 밖에요. 그런데, 기사의 내용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이 기사는 아래 논문 (아직 퍼블리시 되지 않고 온라인에만 공개된 논문입니다.)을 기초로 만들어진 기사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사과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논문 제목은? 보시다시피 "심혈관계질환에 과당지수 (Fructose index)가 포도당지수 (Glucose index)보다 더 연관성이 있지 않은가?" 입니다. 그럼 사과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건 이 논문을 기사화한 다른 외신 (Science Daily)의 내용에 나옵니다.

그런데 괜히 제목에 사과를 강조하는 바람에 중요한 논점이 뒤로 밀린 느낌입니다. 게다가 살이 찌는 원인이 마치 사과때문인 것으로 오독될 가능성이 있지요.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전통적으로 당뇨 및 심혈관계 질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왔던 포도당지수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식품을 나타내는 대신 과당지수는 인슐린 저항성을 촉진(stimulate)하는 것이기에 비만이나 심혈관계 질환에는 과당지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사실 과당은 포도당지수 (Glycemic index)가 22로서 아주 낮은 물질입니다. 보통 당뇨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Glycemic index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과당이나 설탕 모두 낮은 GI 값을 가지고 있죠 (설탕은 65정도). 하지만 실제로는 포도당지수가 높은 식품인 감자나 쌀 등 전분질류 식품보다 과당이 많이 함유된 식품이 비만이나 심혈관계 질환과 높은 연관성이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과당의 체내 역할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죠).

그런데 이거 하나는 지적해야겠군요. 뉴스엔의 기사에서

"연구팀은 비만과 관련, 식품 속에 함유된 과당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며 가령 사과속의 과당이 옥수수 시럽속에 함유된 고농도 과당만큼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는 것은 아마 식품 전공 기자가 아니라서 잘못쓴 것 같은데, 옥수수시럽에는 과당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대신 고과당옥수수시럽 (HFCS, High Fructose Corn Syrup)에는 과당이 들어있죠. 옥수수는 전분질인데 이 전분질의 포도당을 효소를 이용해서 과당으로 전환한 것이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기사는  
 
"연구팀은 비만과 관련, 식품 속에 함유된 과당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며 가령 사과속의 과당이 고과당옥수수시럽속의 과당만큼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가 맞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HFCS의 과당함량은 벌꿀의 함량과 비슷하답니다.^^

참고로 사과 200그램짜리 하나의 안에는 과당(fructose)가 약 12그램, 설탕이 약  6그램, 포도당이 약 3그램 들어있다고 합니다. 설탕은 과당과 포도당의 혼합물이므로 과당이 약 15그램 들어있는 셈이군요. 과당이라는 말 자체가 과일에 들어있는 당이라는 이야기니까 제일 많이 들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밀양, 그 고통의 질문들


대략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미치도록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말이다. 그 첫 번째는 <웰컴 투 동막골>이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밀양>이었다. 올 여름에 인터뷰하러 한 열흘 귀국했을 때, 밀양을 놓친 것이 얼마나 아쉽던지.

영화가 공개되자 멜로영화인줄 알았는데 반기독교 영화라는 (헛)소문이 났고 영화를 본 양식있는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기독교영화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던 밀양.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래의 씨네21 별점평을 보라.

남다은 판타지 없이도, 구원의 가능성 없이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
황진미 멜로영화->유괴영화->기독교영화->메디컬영화. 전도연 연기 작렬! ★★★☆
유지나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에게 보내는 선물 ★★★★
이동진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 ★★★★★
박평식 “내 울부짖은들, 뉘라 천사의 열에서 들으리오” 밀양 엘레지! ★★★★
김혜리 죽고 싶은 명백한 이유, 살아야 하는 은밀한 이유 ★★★★
김지미 응달까지 파고드는 햇살 같은, 미약하지만 끈질긴 구원의 가능성 ★★★★☆
김봉석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

세상의 어떤 영화가 이렇게 평론가들에게 구원, 영혼, 상처, 천사 등 기독교의 핵심적 단어들을 늘어놓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보자. “믿음과 사랑” 또는 “신의 사랑”의 이름을 갖고 있는 “신애 (信愛/神愛)”, “따르며 찬양하는” 종찬 (從讚)이 주인공인 영화. 실제로 출연하고 설교대본까지 참여한 목사님 등등, 여러가지로 범상치 않다. 기독교인을 그린 영화는 <투캅스>에서부터 <그놈 목소리>까지 여러 번 있었지만 정면으로 기독교인의 모습을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고),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풍자적이지도 않게 보여준 영화는 <밀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밀양을 미치도록 보고 싶게 만들었던 것은 기독교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창동 vs 김혜리 인터뷰를 읽고 나서였다. 이창동이 정의한 밀양은 “고통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감독이, 80년 광주를 은유한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라니.

그렇게 바라고 그리다가 본 밀양, 역시 밀양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창동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다시 보기 고통스럽지만 통과해야만 하는 영화,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통찰을 주는 영화, 일상에서 흔하지는 않을지라도 영화적(드라마틱)이지도 않은 삶을 그린 영화…

우리는 흔히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또는 은은한 사랑을 그리는 영화를 기독교(적) 영화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밀양은 인간의 삶을 제대로 그려서 기독교 영화라고 부를 만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영과 혼과 육을 분리해낼 수 없듯이, 우리의 신앙과 삶, 허위와 진실 이런 것은 우리 삶 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영혼만 이야기하면 언제나 그 다음이 공허하다. 왜냐면 우리는 그 다음 날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으로 받쳐주지 못하는 신앙은 위선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화 속의 약국 부부는 나쁜(사려깊지 못한? 부족한?) 사람, 신애는 불쌍한 사람, 그나마 종찬이 가장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표상, 이런 도식으로 영화를 읽는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별로 공감이 안간다. 오히려 밀양이 빛나는 지점은 그런 도식을 벗어난 삶의 풍부함에 있다고 본다. 약국부부도 한국 영화가 그려온 기독교인의 전형성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있을 법한 우리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그 고통 속의 신애 조차도, 또 그 신애로 표상되는 신앙인들, 원수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신앙인들 조차도 (이창동 감독이 특별히 신앙인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허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창동의 위대함이 발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전혀 신애를 동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합리화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그녀를 더욱 깊숙히 깊숙히, 바닥으로 바닥으로 몰고간다. 심지어 정신병원에서 나온 바로 그 날, 다시 살인자의 딸을 만나야 하는 운명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 줄기 햇살을 툭 던지고 영화는 끝이다. 그야말로 비밀스런 햇살이다. 자, 이제 신애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 한 번 그려보라는 듯이 말이다.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는 과연 리무진타고 다시 찾아온 리처드 기어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우리는 이런 드라마의 다음을 그려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하나의 판타지로 끝이다. 하지만 밀양의 전도연은 과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까? 그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한 때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 떠난 친구들은 과연 하나님을 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진정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한 때 기독교의 희망이었다가 지금은 절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것일까? 아니면 인생이 그냥 원래 그런 것일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일까? 밀양은 수 없는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근본적이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다니 밀양은 대단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오늘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를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