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강정구교수 사건을 보며 <공동경비구역 JSA>를 생각하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거기에 사상 최초라는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과 이에 반발하는 소위 보수세력들의 싸움이 계속된다. 그 와중에 나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생각났다. 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JSA는 진실에 관한 영화다. 여기엔 서로 다른 진실이 있다. 서로 다른 진실이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이지만 아무튼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보는 남과 북이 있다. 그리고 진실은?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인물, 소피 장 이영애는 남과 북 모두를 거부한 자의 딸이다. <광장>의 이명준의 딸이라고나 할까. 왜냐면 어차피 한쪽에 속한다면 진실은 한쪽만의 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쪽도 저쪽도 아니기 때문에 중립적인 것이 아니고 양쪽의 적이다. 이것이 우리 비극의 시작이다. 진실을 대할 용기가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니면 적이다.


착실하게 진실에 접근하던 소피 장은 결국 아버지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사건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유엔군 상관을 통해 이 나라에 대한 다른 진실을 듣는다. 그 진실은 무엇인가. 그건 “진실이 숨겨져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 한반도라는 사실이다. 그건 한 사진 속에 실재했던 이수혁, 오경필, 남성식, 정우진, 이 네 사내가 만들어낸 사건의 진실보다 더 상위의 진실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을 위선적이라고 한다. 다분히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퍼뜨린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마음)라는 예를 들어 말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말한다. 한국인들은 직선적이고 솔직하다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에 있어서 주로 그렇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한국인들이 더 위선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 1인 시위를 벌이는 시민
ⓒ2005 오마이뉴스 김덕련
무슨 한국인을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살아본 내 경험으로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대단한 나라다. 가진 것 없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좀 자랑할 만 하다. 솔직히 이젠 외국에 나가도 크게 꿀리거나 그들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거나 이런 것 그다지 많지 않다.


교육이나 의료제도도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국이 나을지 모르나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한국이 결코 못하지 않다. 이건 한국에 사는 사람만 잘 모르는 사실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아직까지도 우린 사회적인 위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에 못지않은 법은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국회엔 윤리위원회가 있지만 아무도 징계 받지 않는다. 탈세범이 한국에서 사업하는 놈 중에 탈세 안 하는 놈 있냐고 큰소리친다. 법대로 영업하는 신문사도 없고 연구비 안 떼어먹는 교수도 별로 없다.


영화 <투캅스>에 보면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신참 형사 박중훈이 비리형사 안성기에 열받아 법대로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그랬더니 경찰서가 완전히 포화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대충 대충 사람 봐가며 해야 한다.


이게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지혜이며 진실이다. 그러니 주로 걸리는 건 미운놈이고 그러니 언제나 음모론이다. 진실은 상황에 따라 해석되며 신뢰 수준은 낮고 약점 은폐형 문화가 기승이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사상 최초”로 지휘권을 발동한 것도 그렇다. 우린 다 알고 있다. 과거엔 검찰총장이 지휘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꼭두각시였다는 것을.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이신가들! 그냥 지휘권 발동하지 말고 조용히 불러 나중에 한자리 준다고 구슬리거나 도청이라도 해서 약점 잡아 시켜야 좋겠는가?


난 이번 일을 보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건 강정구 교수의 의견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천정배 장관이 법에 정해진 자기의 권리에 따라 일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보안법 적용해서 수사해라 마라 이런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인신구속 여부에 대한 지휘를 한 것이다. 법에 정해진 권한인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문제 있으면 검찰이 계속 수사하면 될 일이지.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속사보다 침착하고 냉철한 상황판단이 중요함을 오경필에게 배운 이수혁은 바로 그 침착해야 할 상황에서 오경필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다행히(?) 총알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둘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평화 유지를 위해 진실을 숨겨두고 떠나는 소피 장에게 진실을 고백한 이수혁은 결국 자신에게 총알을 박는다. 어쩌면 그건 진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 독특한(?) 학자의 주장을 감옥에 집어넣어 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도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조갑제, 김용서, 한승조 등등의 그 많은 반정부, 반민족 발언에 그랬듯이 대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끝으로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 대한 의견은 노하우21 김창환님의 주옥같은 글 한 구절 인용하고 마치련다.


“입으로는 미국은 상종 못할 학살자로 믿는 아버지마저도 미국에서 교육 받도록 안식년 때 아들을 미국에 데려가는 이 현실. 이 얼마나 훌륭한 자유경쟁 시장의 작동에 대한 증거입니까. (중략) 그런 아버지 밑에서 평생을 자라도 충실한 자유경쟁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이 일단의 무리들은 수업하나 들으면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위험인물이 된다고 공상을 한다는군요.” 


자신감을 가져라! 대한민국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