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18일 일요일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김영사, 제임스 콜린스, 제리 포라스 지음)을 읽다.

내가 본 책 중에서 최악의 번역은 갈브레이스가 지은 범우사판 <불확실성의 시대>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책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은 아마 내가 본 책 중에 최악의 역제(譯題)를 가진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잠깐, 잠깐, 여기서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김영사가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끼워 팔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 책의 장점마저 너무 죽여버리는 결과가 되었다고 본다. 신문 편집을 '제목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 일어나는 불필요한 오해들에 대해 출판계도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Built to Last]이고 부제는 [Successful habits of Visionary Companies]이다. 책의 어디를 봐도 '8'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성공하는 기업'?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저자들은 성공하는 기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비전기업이다. 그러니 굳이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제목을 붙이려면 그냥 <비전 기업>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여기서 잠깐. 사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도 원뜻은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highly effective people)'의 7가지 습관>이다.) 자, 재미없는 제목이야기는 여기까지!

최근에 개인적으로 '경영'이라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현실적이고도 지적인 호기심 때문에 요즘 다시 책을 들었다. 과거에 주말 서점 트립(이건 순전히 내가 지어낸 용어다.)을 하면 이런 '처세'류로 분류되는 책들을 비웃던 내 천박한 우등의식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솔직히 그런 책을 읽고 만족했던 기억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오히려 현실적인 필요를 절감하던 때인지라 동 분야 최고의 책(정말?)이라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었을 때보다 더 울림이 크다.  

저자들은 6년에 걸친 치밀한 조사를 통해 비전기업(visionary company)에 대해 분석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각 부문에서 선정된 기업들의 공통점을 나열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개별기업들의 역사와 성장을 동시대의 비교 기업들과 비교하여 무엇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결정짓는지 알아보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분석은 많은 통찰을 준다.

먼저 책장을 넘기자마자 뒤통수를 한 대 딱 치며 정신을 확 깨게 만드는 것이 12개의 신화를 부수는 것이다. 그 12개의 신화는 다음과 같다.

1. 일류 기업을 시작하려면 일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2. 비전 기업에는 위대하고 카리스마적인 비전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3. 성공적인 회사들은 우선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4. 비전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핵심 가치 중에는 공통 부분이 있다.
5.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6. 우량 기업들은 안전 위주로 일을 한다.
7. 비전 기업들은 누구에게나 일하기 좋은 직장이다.
8. 크게 성공한 회사들은 보기 좋고 복잡한 전략적 기획에 의해 그들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9. 근본적인 변화를 자극하기 위해 외부에서 CEO를 고용해야 한다.
10. 성공한 기업은 주로 경쟁기업을 물리치는 데 관심을 둔다.
11.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는 없다.
12.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비전 선언문'을 통해 비전을 갖는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이러한 관념들이 어떻게 깨어지는지는 이 책을 직접 읽으면서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다만 이 모든 신화가 '틀렸다'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것은 틀렸고 어느 것은 상관없다는 거다.

아마 이 책 제목에서 8가지 습관이라고 한 것은 이 책이 총 10장으로 되어 있고 그 첫째와 마지막을 생략한 나머지 8장의 제목을 가지고 붙인 듯하다. 그 제목들을 한 번 나열해 보면

1. 시간을 알려주지 말고 시계를 만들어 주라.
2. 이윤추구를 넘어서
3. 핵심을 보전하고 발전을 자극하라.
4.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
5. 사교(私敎)같은 기업 문화 (私敎라는 단어도 있나???)
6. 많은 것을 시도해서 잘되는 것에 집중하라
7. 내부에서 성장한 경영진
8. 끊임없는 개선 추구

이다. 저자들은 나중에 이것을 4가지 정도로 요약하는데 시계 만들기(회사 그 자체, 조직 그 자체의 중요성), '그리고'의 영신(상반된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핵심의 보존과 발전의 자극, 그리고 얼라인먼트(끊임없는 개선)이다.

대부분의 책, 또는 설교의 맹점은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친절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드는 갖가지 의문들을 따로 정리하여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저자들의 사려 깊은, 또는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잡글을 쓰면서 맨 뒤에다가 조금이나마 덧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비판의 글을 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수고를 덜게 해 주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저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이래서 좋은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덧글]
1. 그렇다면 한국에서 비전기업을 꼽으라면 어디를 들 수 있을까. 내내 생각났던 기업은 이랜드였다. 요즘엔 도대체 회사가 아직도 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그래도 뚜렷한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운영했던 기업이 아닌가 한다. 저자들이 비전기업이라고 꼽은 IBM이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듯이 이랜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는 풀무원, 유한양행,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물론 실제적인 경영지수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2. 저자들이 말한 대로 이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라 NGO등에도 해당되는 점들이 있다.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무리는 없다고 본다. 죠이 설문을 보면서 더욱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2002년 3월 8일 금요일

<와이키키 브라더스> 행복에 대해 질문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다.

까를로스 산타나의 <유로파>의 연주로 시작해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주인공의 삶 역시 <유로파>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만큼으로 추락하는, 또는 변해가는 내용을 닮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절망은 아니다. 분명히 평범한 우리네 인간 군상들이 보기에는 일종의 추락이고 절망인데, 감독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너 행복하니?"

그렇다. 누가 영화 광고 카피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질문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당신은 행복한가. 왜 행복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아니면 돈이 많아서? 그 정답은 무엇일까...

최근 내 개인적인 고민거리이자 관심거리는, 연극이나 드라마 제목으로 유명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최근 회사 생활을 하면서, 또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들은 무엇을 기쁨으로 사는지 궁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관심거리도 다양하고 각자의 삶이 천차만별이지만 그걸 통일해서 묶을 무엇이 과연 있을까? 솔직히 드는 첫 번째의 생각은 '돈'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사회의 물신화니 자본주의의 노예니 뭐니 많은 사회과학적인 분석도 대부분 인간의 욕망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악의 근본이고 우상이라고 배우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돈은 '좋은 수단'이라는 이유로 주객전도의 원인제공을 한다.

물론 돈이 최고는 아니다. 하지만 무얼 하든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즉 행복이라는 층위의 최고가 아니고 근본이다. 그렇기에 돈은 더 우리를 얽맨다. 최고가 아니고 근본이기에 우리의 선택이나 생활 습관에 있어서 돈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듯이, 행복과 돈은 같지 않다. 행복의 층위의 기초에 돈이 있더라도 말이다.

바로 그 때, 임순례 감독은 보여준다. 이런 삶은 어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어느 무명밴드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초라하고 또 초라하다. 헐리욷 영화라면 돈을 많이 벌거나(소위 성공하거나), 돈을 초월한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선사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예술영화라고 한다면 돈에 의해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의 폐부를 긁어놓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도 않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계속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고 들어오면서 말이다.

음악의 꿈을 못 버려 가라오케에서 기타 하나로 자신의 음부를 가리고 연주를 하는 주인공은 과연 행복할까? 그렇다고 학창시절 밴드의 꿈을 키워오다가 그 꿈을 버리고 약사로, 공무원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는 원조 와이키키 부라더스 멤버들은 행복할까? 아니면 그들은 정말 불행할까?

그 해답을 찾는다면 이 영화는 정말 좋은 영화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덧붙여] 중학교 시절, 친구 다섯명이 그룹사운드 하나 만들어서 멋들어지게 남들 앞에서 폼잡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다섯명 중에 인문계 주간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단 두 명. 그걸로 우리들은 흩어졌고, 나는 공부에 귀의했다(정말?).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텅빈 경주시내 어느 호텔인지 여관에서 있었던 장기자랑에서 나는 우리반 대표로 등떼밀려 노래를 불렀고(꿈의 대화), 내 중학교 친구중 하나는 정말 그룹사운드를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더군... 음...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그때 생각이 자꾸 나는지... 왜 좀 서글픈지...

2002년 1월 8일 화요일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를 읽다.

대게 그러하듯 경영인이나 정치인의 책은 허무하다. 그런 책은 어느 정도 본말전도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 바쁜 사람들이 책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쓰는 책은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정치인의 책은 후원회나 선거를 의식한 일종의 광고이며 경영인들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게다가 직접 쓰지 않고 대부분 대필(거의 창작 수준의 경우도 있지만)이다. 조성기의 소설에서였던가 어디선가 대필작가의 애환을 다룬 소설도 있었다. 물론 왕회장 같이 대단하신 분들은 TV 작가 김수현같은 거장(?)에게 대필을 부탁하기도 한다지만...

아무튼 안철수연구소의 코스닥 상장과 비슷한 시점에 나온 이 책에 대해 호감을 가질 생각이 나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책제목이 맘에 걸렸다. 영혼이 있는 승부? 이건 경영인들의 책제목이 아니다. 로버트 슐러의 <불가능은 없다> 돌아가신 왕회장의 <실패는 있어도 시련은 없다>, 희대의 사기꾼이 된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뭐 이렇게 제목만 봐도 뭔가 '필'이 팍 오는(사지 말아야겠다는^^) 제목이 아니고 영혼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목이 조금은 생소했고, 안철수 연구소의 주가 폭등에도 "우리는 절대 주가를 관리하지 않겠다"(정말?)라는 그의 신문기사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안철수. 그는 조금 이상한 이력의 사람이다. 사람의 이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느 면에서 천박하고 어느 면에서는 당연하다. 전자는 그 사람의 출신 지역이나 학교 등을 따지는 것이고, 후자는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보는 것이다. 하여튼 그는 의사이고 의대교수였고(나는 의례 의사들이 그러하듯이 무슨 외래교수정도인줄 알았는데 정식으로 대학의 의예과 학과장까지 했다) 벤처기업 사장이다. 이 두가지 이력의 딱 하나 연관성은 '바이러스'라는 것인데, 아직도 컴퓨터 바이러스가 컴퓨터를 오래하는 사람에게 걸리는 질병으로 아는 어른(우리 아버지)들이 계시기는 하지만, 사실 내가 쓰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병원성 바이러스와 컴퓨터 바이러스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것인 것을 알 것이다. 그렇다. 이 둘은 분명 다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전혀 다른 두가지의 이력을 갖고 있는 독특한 사람이다.

결국은 그가 의사를 포기하고 벤처기업 사장이 되었다. 1,000만달러 인수제의(과연 나라면? 판다. 당신이라면?)를 거부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그런게 아니다. 가끔 보면 분명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나누는 사람들, 왼손이 모르게 좋은일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찾아보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사장이 되지 못한다. 사장이란 이익을 극대화하고, 회사를 키우고, 대박을 터뜨리고, 이름을 날리고, 수단과 방법보다는 결과가 말하고, 뭐 이래야 하는 것이다. 정직하게 사업한다? 웃기는 소리다.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바는 그렇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을 다룰 줄 안다. 그는 자신의 꿈을 더 거대하고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전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원들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설프지 않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드물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주목하게 되었고, 언제나 그냥 넘기던 신문의 주식시세표에서 그의 회사 주가에 주목한다.  

영혼이 있는 승부. 그는 종교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영혼을 말한다. 정직과 성실로 승부한단다. 그래 그런 것이 가능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안철수 파이팅이다!!